좋은 보도 기준, 정치적 입장
페이지 정보
작성자 oreo 작성일25-05-19 21:16 조회2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좋은 보도 기준, 정치적 입장 별로 달라져..."언론과 소비자 문제 함께 봐야 문제해결" 한국언론학회 2025 봄철 정기학술대회, 상업적 유인 따라 언론 정파성 강화 구조 지적[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Gettyimages. 진영을 막론하고 정치인은 언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주장한다. 불리하게 짜여있는 언론 지형 때문에 자신의 발언이 '왜곡'된다는 식이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는 것은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흔한 일이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정파적 채널이 많아질수록 특정 정파의 입맛에 맞는 보도는 '정론'이 되고, 그렇지 않은 보도는 '가짜뉴스'가 되기 쉽다.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2025 봄철 정기학술대회'에서 이러한 언론 소비 환경이 언론을 더욱 정파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부원장(교수)이 '갈등 사회에서 언론과 언론학의 책임'을 주제로, 김희원 한국일보 뉴스스탠다드실장이 '생존, 혁신, 민주주의 - 기자는 무엇을 위해 분투하는가'를 주제로 발제했다.언론의 기본원칙과 충돌하는 '정파성 생태계'언론은 공론장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 심석태 교수는 서부지법 폭동 등 정치적 갈등이 물리적 충돌로까지 번지는 상황에서 이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언론이) 서로 다른 광장에 모인 사람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쪽 편을 들어주는 것으로 (대신)하는 건 아닌가”라고 물었다. ▲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열린 '한국언론학회 2025 봄철 정기학술대회' 대주제 세션에서 심석태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사진=박재령 기자 심 교수는 “오래전부터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과도한 상업성과 정파성”이라며 “어떤 언론이든 일정한 정파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론 윤리 규범을 위반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혹은 위반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정당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정도의 정파성이 문제”라고 말했다.'기레기'라는 멸칭 역시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 붙는 대상이 달라진다. “'내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문제”라고 지적한 심 교수는 “현업에 있는 기자들이세밀함과 정교함이 함축된 작은 작품은 작가의 눈과 손, 대상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예술의 본질과 작가의 의도, 그리고 시각적인 경험이 크기와는 상관없이 강력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리처드 페티본의 몹시 작은 크기(4.2 x 4.2㎝) 회화는 세밀한 관찰과 표현으로 큰 감동을 주고, 칼 안드레의 정사각 알루미늄으로 구현된 조각은 오히려 더 넓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찰스 레드레이 ‘정장’ 대형설치나 대형회화가 미술계의 주류를 이루는 경향 속에서, ‘크기’라는 물리적 조건이 예술적 감동과 메시지의 깊이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재조명하려는 자리가 마련된다. 6월19일부터 7월13일까지 서울 용산구 이태원 뉴스프링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열리는 단체기획전 ‘스몰 이즈 뷰티풀(Small is Beautiful)’이다. 전시될 작품들은 각 작가들 대표 시리즈의 작은 버전으로 조각과 회화,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의 특성들을 함축하고 있다. 스위치 버튼을 소재 삼아 존재와 부재, 기억과 망각을 표현한 레이철 화이트리드, 예술의 복제와 차용을 주제로 창작의 고유성과 예술의 경제적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 리처드 페티본의 미니어처 작품들, 풍선처럼 보이지만 레진으로 만든 미샤 칸의 위트 있는 미니거울, DNA를 추적하여 인간의 근원을 찾아 나간 잔느 실버손의 고무로 만든 인물 피겨, 현대사회에서 직업이 갖는 의미와 그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찰스 레드레이의 정장, 주로 사용했던 상징적 도상의 미니어처 조각들이 칸마다 배치되어 마치 인형의 집을 연상시키는 테리안의 박스 등 다양한 서사를 지닌 작품이 한 공간에 모인다. 미샤 칸 ‘미니거울’ 또한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여 삶과 죽음, 시간의 순환을 탐구하는 미야지마 다쓰오의 작업과 작가의 순간적인 움직임이 고스란히 담긴 제여란의 회화까지, 평소 만나기 어려운 작품들을 작은 형태로 감상할 특별한 기회다. 크기의 한계를 넘어 작은 것이 지닌 거대한 의미를 발견하는 이번 전시는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확장된 예술의 세계를 경험케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